‘의대 증원’ 마냥 웃지 못하는 지방대…“교수 어떻게 달래나”

2025학년도 의대 2천명 증원, 83% 지방에 국립대 의대 7곳 200명 ‘메가 의대’로 거듭 의대생 동맹휴학에 교수 사직 위기 속 고심 “질 높은 교육 중요…교수들 동기부여 필요” 수도권 이탈도 고심…“전공의 TO 확대해야”

2024-03-23     최영준 기자

2000명이 늘어나는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의 80% 이상을 받은 서울 바깥 대학들은 반색하지 않고 표정을 관리하는 모습이다.

수험생 수요가 매우 높은 인기 학과인 의대 정원이 장장 19년째 묶여 있다 늘어나는 것인 만큼 반길 수 밖에 없지만, 의료계는 물론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이 매우 거센 점을 의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대 수혜자가 된 지방 국립대에선 신입생들이 수도권으로 이탈하면 어쩌나 하는 위기감도 느껴진다. 대입 전형 설계에 고심하는 한편, 의대 여건 개선을 위한 재정 지원을 더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2일 교육부와 대학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일 '2025학년도 의대 학생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하고 비수도권 대학들에 82%(1639명), 경인권에 361명(18%)의 증원분을 배분했다.

서울 소재 대학들은 증원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지방 거점 국립대 7개교(경상국립대·경북대·부산대·전남 대·전북대·충남대·충북대)는 200명으로 늘었다. 사립 3개교(순천향 대·원광대·조선대)도 150명이 돼 서울대(135명)보다 큰 '메가 의대'가 됐다.

대학 당국 입장에선 의대 증원은 경쟁력 강화에 큰 보탬이 된다.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 어느 지방에 있든 우수한 신입생을 모집할 수 있고, 등록금도 비싼 데다 의사를 배출해 대학의 명망 또한 높일 수 있다.

특히 정부로부터 정원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대학 당국에게 '우리 대학의 의학 교육 여건이 우수하다는 인정을 받았다'고 홍보할 만한 명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배정으로 정원을 3배 이상 늘린 한 사립대 관계자는 "교원 수나 건물, 시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지역 의료 환경까지 고려해 정부가 발표한 것이므로 (인정을 받았다는) 그런 방증"이라면서도 "의정 갈등이 첨예한 상황이라 조심스럽다'고 털어 놨다.

전국적으로 의대 교수들이 오는 25일을 기점으로 집단 사직을 결의하고 있고 이런 움직임은 정부의 배정 결과가 나온 직후 더 거세지고 있다.

경북대 등에선 의대 증원을 두고 총장에 대한 퇴진 압력이 거세다. 대학들은 의대생들의 눈치도 봐야 한다. 지난달 20일부터 의대생들이 집단적으로 휴학을 신청하고, 한 달이 넘도록 수업에 돌아오지 않아 학사 일정 차질이 계속되지만 지금은 설득 말곤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한 영남권 대학 총장은 "의료계의 반발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의대 정원이 늘어났을 때 제대로 된 교육의 질을 담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교육을 하는 것은 의사, 즉 교수들인 만큼 동기 부여가 없으면 굉장히 힘들어진다"고 털어놨다.

이 총장은 "우리가 아무리 여건을 갖춰 나간다 해도 2~3년 이내에 완벽하게 갖출 순 없다"며 "교수들이 '우리가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겠다'는 마음가 짐으로 교육에 임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 부분을 어떻게 할 지가 가장 고심해야 할 부분이라 본다"고 말했다.

대학들 앞에는 숙제도 있다. 당장 내년도 신입생을 뽑는 대입 전형부터 어떻게 설계해야 할 지다. 특히 지역인재 선발전형을 60% 이상 확대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받아든 비수도권 대학들의 고심도 만만찮다.

현행법상 지역인재 전형은 지방대가 있는 권역 내 고등학교 출신만 지원할 수 있다. 법정 기준은 충청권, 호남권, 대구·경북권, 부산·울산·경남권은 각각 정원의 40%, 강원권과 제주권은 각각 20% 이상이다. 적어도 60% 비율 자체를 맞추는 것은 무리 없다는 게 복수 총장들의 반응이다.

이미 지난해 4월 정한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에서부터 지방 의대 26개교의 지역인재 선발 비율은 53.9%에 이른다. 한 예로 강원대도 법정 기준인 20%는 물론 당초 계획인 30.6%보다 두 배를 늘린 60%를 뽑을 방침이다.

하지만 뽑아 놓은 학생들이 졸업하고 지역에서 의업을 이어갈 지는 다른 문제다. 의대생들이 '반수'를 택해 수도권 의대로 이탈할 수 있고, 졸업하고 수도권 지역의 수련병원으로 떠나면 증원 취지가 퇴색된다.

복수의 총장들은 현재 45% 수준인 비수도권 전공의 배정 비율을 적극적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예로 전북대와 원광대를 합하면 350명이 한 해에 배출되나, 올해 전북 대병원과 원광대병원, 예수병원이 모집한 인턴 규모는 104명으로 29.7%에 그친다.

한 호남권 국립대 총장은 "학부생 증원도 중요하지만 전공의 TO(인원)도 증원해 줘야 한다"며 "너무 수도권 위주로 배정돼 지역에 남지 않고 수도권에서 수련 받고 거기서 정주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전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현재 45% 수준의 비수 도권 전공의 배정 비율을 비수도권 입학정원 규모에 맞춰 조정하겠다"고 했다.

다만 올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5대 5 정도로 가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교수와 시설 확충을 위한 예산 역시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이라도 편성해야 늦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도 신입생이 본과로 진입하는 시간까지 3년 남짓 남았는데 강의실 증 축 등엔 빠듯하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 국립대 총장은 "인원만 증원되고 후속 조치가 뒤따르지 않으 면 교수들을 설득했던 총장들도 난감하다"며 "교수 정원도 늘려준다 하고 재정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한다며 '하 늘이 두 쪽 나도' 지원해 주겠다 했으니 교육부나 정부를 믿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