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2009-05-15     뉴시스
‘헌데 글이 45편쯤 되면 책 한권 꾸리겠지? 전에 ‘내 생애 단 한번’은 41편이었거든. 제일 좋은 글을 여기 넣고 싶은데 새삼 보니 맘에 안 드는 글이 많네. ‘괜찮아’는 여기에도 집어넣었는데 서문에 흐트러진 글을 모으는 의미라고 쓸 거니까 괜찮겠지?’ (2009년 2월24일 편집자에게 보낸 e-메일)

그림작가 선정에서부터 제목, 디자인 콘셉트에 이르기까지 9일 세상을 떠난 장영희(57) 교수의 손을 거쳐 완성된 책이다. ‘내 생에 단 한번’출간 이후 2000년 10월~2003년 12월, 2007년 1월~2008년 6월 월간 ‘샘터’에 연재한 원고 57편 중 단행본에 수록할 것들을 가려내고, 중복되는 내용들을 정리했으며, 한 편 한 편 글을 다듬었다.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짬짬이 글을 손봤다. 2월25일 최종 원고 39편을 보냈다. 이어 3월30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출판사에 넘기고 장 교수는 입원했다.

병상에서도 그녀는 출판사에서 1차 윤문을 거친 원고를 e-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해 확인했고, 시인 김종삼(1921~1984)의 유족에게 연락해 그의 시 ‘어부’에서 책 제목을 따오는 것을 허락했는지, 추천사는 누구에게 부탁할지 일일이 점검했다.

입원 중인 4월23일 마지막 교정지와 표지 시안을 넘겨받아 1주간 검토한 뒤 4월30일 교정지를 출판사로 보냈다. 마지막으로 편집자와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4월16일이었다. e-메일로 ‘샘터’와 서면 인터뷰를 약속한 그녀는 4월24일 질문지를 받았으나 건강이 악화돼 결국 답변을 보내지는 못했다.

잠시 퇴원, 집에서 가족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던 장 교수는 5월7일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다시 입원했다. 이어 5월8일 인쇄된 책이 나왔지만 그녀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가족이 대신 책을 받아 병상의 그녀에게 출간 소식을 전했다. 결국, 장 교수는 병상에서도 놓지 않은 이 책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5월9일 저 세상으로 갔다.

책에는 2001년 미국 보스턴의 안식년 경험, 척추암 탓에 쉬었다가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연재를 재개했을 때, 다시 연구년을 맞았으나 암이 간으로 전이돼 미국행을 포기하고 국내에 머물게 됐을 때의 일들 등 9년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인이 이 책의 제목을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으로 정한 것은 무엇보다 기적의 책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적을 원한다. 암에 걸리면 죽을 확률이 더 크고, 확률에 위배되는 것은 기적이기 때문이다. … 나의 독자들과 삶의 기적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기적이란 다른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힘들어서 하루하루 어떻게 살까 노심초사하며 버텨낸 나날들이 바로 기적이며,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