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불법 행위·사업장 점거 등 우려
파업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를 막고, 하청 노동자 노동쟁의 범위를 원청 기업으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기업들은 이 노란봉투법이 입법화될 경우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지난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 대다수는 노란봉투법 제정에 반대해 왔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제조업체 202개사를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의 88.6%가 기업과 국가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노란봉투법이 입법돼 예상되는 영향으로 기업들은 '빈번한 산업현장 불법행위'(56.9%)와 '사업장점거 만연으로 생산차질 발생'(56.9%)을 가장 우려했다. 이어 '손해누적에 따른 경영 타격'(50.5%), '정치투쟁 증가'(30.2%), '국내기업 생산투자 기피'(27.7%), '외국기업 국내투자 기피'(16.3%) 등이 뒤따랐다.
업종별로 고민도 깊다.
▲조선업계는 노란봉투법이 현실화하면 가장 타격이 큰 업종으로 꼽힌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불법 도크 점거 같이 공장 가동 전체를 멈출 수 있는 불법 파업이 합법화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6월2일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가 파업에 들어가며 불법으로 1도크를 점거해 창사 이래 50여년만에 처음으로 배를 물에 띄우는 진수 작업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이 기간 손해액은 회사 추산으로 8000억원에 달한다.
조선업계는 노란봉투법이 제정되면 이 같은 불법 파업이 또한번 극성을 부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철강업계도 노란봉투법 제정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같은 일관제철소는 고로 공정에서 압연 공정까지 24시간 가동된다. 어느 한 공정이라도 가동을 멈추면 쇳물 생산 자체를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철강사들은 노란봉투법이 현실화하면 노조원들의 파업 빈도가 잦아질 것으로 본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지난해 10월 노조 파업으로 열연1,2공장의 가동에 차질을 빚었다. 이 여파로 2주간 당진제철소 냉연1,2공장을 휴업하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도 노란봉투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계의 대표적인 강성 노조로 꼽히는 자동차 노조는 과격한 투쟁을 더 늘릴 수 있다.
실제 지난 2018년 한국GM에선 사측이 경영난을 이유로 성과급 지급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자, 노조가 카허 카젬 전 국GM 사장 집무실까지 강제 점거한 바 있다.
당시 한국GM 노조원 50여명은 '사장실 항의방문'이라는 명분으로 경비원 제지를 뚫고 사장 집무실을 점거했다. 이들은 쇠파이프로 카젬 사장 집무실내 책상 등 집기를 부수고, 카젬 사장은 다른 곳으로 집무실을 옮기기까지 했다.
이때도 해당 노조원에 대한 사내 징계가 이뤄졌지만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는 없었다.
▲택배업계도 노란봉투법이 위협적이다. 지난해 2월 택배노조원 일부는 CJ대한통운 본사를 기습 점거해 19일 동안 불법 농성을 벌인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지난해 말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 등 관련자들을 검찰에 송치한 데 이어 같은 달 재물손괴, 업무방해, 건조물 칩입 등 혐의를 받는 택배노조원 4명을 추가로 검찰에 송치했다.
한 중견 건설사 대표는 "건설현장에서는 파업과 태업이 일상화돼 있어서 손해배상 청구권이 노조가 불법행위를 저지르는데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며 "이마저도 없으면 어떻게 사업을 해야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제조업체 대표도 "한국에서만 유독 불법 파업이 심하게 일어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사장실을 불법 점거해도, 본사를 장기 점거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