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졌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육아=여성 몫’
과도한 경쟁…불행한 사회에 꺼려지는 출산
정부는 매년 저출생 극복을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편성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매해 출생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출산율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고, 아동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자녀·육아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4%가 '나의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답했으나 20대 여성들은 42%, 30대 여성들은 49%만 '나의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임신과 출산의 가장 직접적 당사자인 2030 여성들이 되려 가장 자녀 갖기를 꺼리는 셈이다.
◆나아졌다지만…여전히 느껴지는 '육아=여성 몫'
심모(30)씨는 "남성의 육아휴직을 아직 주변에서 보지 못했다"며 "과거보다 '육아는 부모가 공동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이 육아를 주로 담당하고 있어 특히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꺼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2022년 육아휴직 통계에 따르면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6.8%에 그쳤다. 전년과 비교하면 1.6배(2.7%p) 상승한 셈이지만 여성의 육아휴직 사용률(70.0%)에 비춰보면 턱없이 모자른 상황이다. 2030 여성들은 남성의 육아휴직이 여전히 적은 상황에서 경력단절에 대한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홍모(25)씨는 "남성에 비해 여성은 출산 뒤 직장에서의 경력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며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출산을 선택할 여성은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과도한 경쟁으로 불행한 사회 속 꺼려지는 출산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2023년 자녀·육아 인식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없어도 되는 이유 중 1위는 경제적 부담(64%)이었고 2위는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61%)였다.
반면 20대 여성을 따로 보면 아이가 행복하기 살게 힘든 사회라는 응답이 74%로 1위였고 30대 여성의 경우에도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라는 응답이 63%로 평균보다 높았다.
문모(27)씨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것은 '나 살기도 바쁘다'는 것이고 이는 내 생존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잘해줄지보다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앞으로도 잘 살 수 있다는 안전망을 확보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모(28)씨도 "임신이나 출산을 떠올리면 당장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것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며 "취업을 위해 투자한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출산을 하는 것이 손해 같다"고 전했다.
2022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첫째아 출산 연령은 32.8세로 10년 전인 2012년(30.5세)과 비교하면 2.3세나 늘었다. 서씨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갖춰질 때 아이를 낳는 것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좋은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고 홍씨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뒤 자녀 계획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노키즈존' 논란에 "무서워서 아이 못 낳겠다"
특정 공간에 영유아를 배제하는 '노키즈존'을 두고는 부정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홍씨는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들에 여러 멸칭을 붙여가며 아이를 혐오하고 아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보호자, 특히 엄마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출산에 대한 의지가 줄어들었다"며 "노키즈존을 두고 친구와 '무서워서 아이 못 낳겠다'는 농담을 주고 받은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A(26)씨는 "경력단절 등의 이유로 출산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안정적 가정에 대한 욕구 때문에 나중에 입양을 하려 한다"며 "노키즈존, 맘충 등으로 대표되는 엄마와 아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행동을 통제하기 어려운 어린 아이보다는 일정 나이 이상의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런 반응과 달리 여론은 노키즈존에 긍정적이며 저출생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2월 발표한 노키즈존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의견은 73%에 달했고 62%는 노키즈존이 저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경제적 지원에 문화 개선 노력도 병행돼야
합계출산율 제고를 위해 정부의 각종 경제적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출산을 100여 일 앞둔 권모(34)씨는 "육아휴직 급여 상한선이 150만원으로 낮은데다 25%는 복직 후 지급돼 소득 대체율이 낮다"며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올린다면 더 많은 부모들이 육아휴직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경제적 지원에 더해 문화 개선 노력 역시 병행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홍씨는 "일이냐 가정이냐, 아이냐 직장이냐는 선택지는 왜 여성들만 고민하게 되는지 모르겠다"며 "여성에게만 양육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벗어나 성평등한 출산 및 양육 문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다만 서씨는 "이미 수도권 집중 문제, 노동 문제, 성차별적 문화 등 전문가들의 지적은 차고 넘치는 듯 하다"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