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처방전값 저렴해 탈모인 수십명 찾아
40분 넘게 기다려 진료 2분만에 처방 끝
탈모인 25만명 중 2030세대가 40% 차지
"탈모 때문에 머리까지 밀었어요. 졸업 후 취업 면접은 어떻게 볼 지 막막해요. 자영업이라도 해야 할까 봐요."
대학생 탈모인 이민근(27)씨는 탈모가 진행되자 머리를 밀었다. 빠진 머리카락이 점차 욕실 바닥에 쌓이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삭발을 선택했다고 그는 말했다.
종로5가 일대 병원과 약국은 다른 곳보다 처방전과 약값이 싸다. 이씨도 주로 이곳으로 탈모약을 처방받으러 간다고 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토요일 아침에도 병원과 약국 앞은 모자를 푹 눌러쓴 청년들로 붐볐다.
한 환자가 작은 목소리로 "탈모 때문에 왔다"고 접수처에 말하자 직원은 말없이 키오스크 화면을 가리켰다. 굳이 직원과 대면하지 않아도 키오스크로 접수할 수 있는 구조다.
개인정보를 입력하자 '남성 탈모약 처방'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병원 안에는 20~30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들이 많았다. 좌석이 부족해 서 있을 정도였다. 청년들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푹 숙인 채 휴대전화 화면만 바라봤다.
오전 10시가 넘자 대기 인원수는 40명까지 늘어났고, 접수처 직원은 대기 중인 환자들을 향해 "4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진료실의 의사는 기자에게 먹는 약이 있는지 물었다. 처음 처방받는 것이라고 대답하자 컴퓨터 화면을 통해 가격대별 선택지를 보여줬다. 카피 제품, 정품 등 여러 종류의 약이 보였고, 한 알당 가격대는 330원부터 1200원까지 다양했다.
가장 싼 카피 피나스테리드 성분의 약을 추천한 의사는 3개월부터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첫 달에 성기능 장애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료를 받고 처방이 나오기까지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기자의 정수리나 이마를 의사가 직접 살펴보는 일도 없었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향한 병원 밑 약국의 창구 뒤에는 탈모약이 성인 남성의 키 높이까지 쌓여있었다.
기자는 '남성형 탈모전문 치료제'라고 쓰인 오뉴페시아를 받았다. 약사는 빨간 글씨로 '어린이, 가임기 여성이 절대 만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복용법이 적힌 작은 종이를 건넸다. 약국 앞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5)씨는 모자를 벗어 머리를 보여주며 "모발이식은 굉장히 비싸대서 아직 대학생 신분이라 약 처방만 계속 받는다. 앞으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사회 초년생 성모(27)씨는 2년째 이 병원을 다니고 있다. 그는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와 긴 대화를 하지 않고 원하는 약을 1분 내외로 처방받을 수 있다며 이 병원을 "완전 공장식"이라고 말했다.
'성지'에서 만난 청년 탈모인들은 "탈모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질병"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민근씨는 "면접관들이 대머리인 나를 어떻게 볼 지 뻔하다"며 "보수적인 직장은 아예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성씨도 "일상이 불편하고 힘들면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딱 탈모"라고 전했다.
실제 국내 탈모증 환자 숫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2030 청년 탈모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전체 탈모인 중 20~29세는 18.6%, 30~39세는 21.5%로 40대 이하 청년 탈모인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권오상 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는 젊은 탈모 환자 증가의 원인으로 ▲빨라지는 사춘기 시작 시기 ▲서구화된 식단 ▲과체중 ▲운동량 부족 등을 뽑았다. 서구화된 식단으로 육류 섭취가 늘고, 이로 인해 생긴 지방이 호르몬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것이 권 교수의 설명이다.
권 교수는 "사고로 생긴 얼굴의 흉터는 질환으로 취급돼 보험의 적용도 받고 군 면제도 받는다. 탈모도 (흉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며 "탈모의 진행을 너무 미용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탈모도 질환으로 인정해 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탈모가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며 "젊은 탈모인들을 위한 지원책을 지자체 규모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