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 달려왔을진대 생채기를 내고도 무심한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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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달려왔을진대 생채기를 내고도 무심한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 이종길
  • 승인 2009.03.0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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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천 주변의 나무들은 맑은 공기와 오염되지 않은 물만 있으면 잘 자랍니다.”
많은 등산객이 지나가고 나면 생기게 마련인 음식물 찌꺼기를 “나무 주변에 묻어두면 거름이 되어 좋지 않겠느냐?”는 한 등산인의 말에 산장 관리인의 짜증스런 대답이었다.
“세상에는 무공해 세제(洗劑)다 무엇이다 하고 떠들어 대지만 사람이 만든 것 치고 자연 그대로의 것과 같을 수 있겠느냐?”면서 “물이 오염되면 주변의 나무들이 죽기 쉬우니 비누는 물론 치약도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취사하게 되면 음식물 찌꺼기가 남게 마련이고, 여인네들은 어디를 가나 취침 전이나 자고 나면 반드시 비누로 얼굴 씻고 무얼 찍어 발라야 하는 것을…. 이날 아침에도 취사장 앞에는 전날 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가 수북이 쌓였고, 여대생들은 비누로 세수하고 치약을 듬뿍 짜내 게거품을 물고 이 닦기에 열중이었다. 이를 두고 ‘쇠귀에 경 읽기’라고 한다던가.
등산을 하다 보면 다같이 산이 좋아 올라 왔는데 산을 더럽히는 인간과 그것을 청소하는 사람이 다르다. 산을 찾는 하이커는 대개 산에 쓰레기를 버리면서 청소는 그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이 여긴다. 산의 아름다움을 쫓아 산에 올라왔을 그들의 행동에 부아가 치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쩌다 정상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다 보면 부근의 하이커들은 이를 본체만체 경치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쓰레기를 줍는 사람을 산 청소 자원봉사자로 생각하는 것일까.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졸라 맨, 그들과 다름없는 등산자임에 틀림없는데 말이다.

우리 등산 도반들은 산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쉽게 썩어 거름이 될만한 것이라면 흙에 파묻은 다음 돌로 괴어 둔다. 그리고 잘 썩지 않는 휴지나 빈 깡통, 비닐, 페트병 등은 모두 가지고 내려온다.
전날은 너무 피곤했던지 10시간 정도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5시가 조금 넘었다. 옆에서 곤하게 자는 사람을 생각해 그대로 누워 있다가 6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언제나 하는 그대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치약이 없기는 했지만 이까지 닦는 호사를 누리면서 느긋한 아침을 맞았다.
지난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아침 일찍 출발해 고기리까지 가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어제의 무리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노고단에서 일박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미역국을 끓여 저녁에 해놓은 밥을 말아 먹으니 남길 것이 없었다.

어제 벽소령 산장에서 만난 젊은 친구에게 온다간다는 말없이 산장을 나섰다. 곧 나무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산길에 토사가 흘러내리지 못하게 오래 전에 박아 놓은 검은 플라스틱을 그대로 둔 채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계단 아래의 시커먼 흉물이 앞으로 수십 년은 그대로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왔다.
명선봉과 총각샘, 토끼봉에 이르기까지 능선 상의 모든 위험 지역에는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아 오르내리기에 너무나 편했다. 이렇게 위험 지역에 여러 가지 시설을 해놓아 산행 시간이 단축되어 총각샘에서 취사할 필요가 없어서인지 샘 부근도 너무 깨끗했다.

옛날 같으면 주변의 쓰레기를 보고 ‘아 여기가 총각샘이구나’하고 걸음을 멈출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물이 필요하여 꼭 샘터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산행하는 경우가 아니면 지나치기 예사일 것 같았다.
화개재에 이르니 썰렁하고 지저분하기는 옛날과 마찬가지였다. (2006년 6월10일 두 번째 종주 때는 주변이 잘 정리된 아름다운 전망대로 변해 있었다.) 전북의 찬바람이 화개로 넘어가는 것도 변함이 없었다. 화개재를 지날 때마다 내가 쉬던 곳에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워 흘러가는 구름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참 시간을 보냈다.
삼도봉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오르면서 땀께나 빼야 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막상 올라보니 그게 아니었다. 끝없는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가.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것이 지겹기는 했지만 옛날에 비하면 한결 수월했다.

도중에 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전 같으면 잠깐 쉬는 데도 안전한 자리를 찾아야 했는데 지금은 그냥 아무 계단에나 주저앉으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계단 오르는 것을 지겨워하고 있으니 내려오는 사람들이 “올라오기 힘들죠. 우리는 내려가니 참 편합니다”면서 인사했다. 싱긋 웃는 것으로 그들의 인사에 답하고 595번째의 마지막 계단을 향해 묵묵히 오르기를 계속했다.
삼도봉에 올라 언제쯤인가를 기억해 내기조차 어려울 만큼 오래 전에 한번 오른 적이 있는 불무장 등을 바라보고 있으니 당시 같이 올랐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피아골로 하산하면서 무릎이 아파 무척 고생했던 조태근씨가 문득 생각났다. 산을 좋아하면서도 덩치 때문에 높은 산에 오를 때마다 고생을 많이 한 사나이였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반야봉에 오르는 것은 생략했다. 반야봉만은 오르기보다는 천왕봉 쪽에서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오르지 않는다. 노루목으로 향하고 보니 아침 일찍 구례에서 올라와 등산을 시작한 사람들인 듯 천왕봉 쪽으로 향하는 등산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노루목에서 40대의 부부 2쌍과 같이 쉬게 되었다. 당일 등산을 온 듯 모두의 배낭은 가벼워 보였다. 나의 배낭이 큰데다 꽤나 무거워 보였던지 일행 중 한 여인이 한번 들어 보잔다. 배낭을 들어보고는 이렇게 무거운 것을 어떻게 메고 다니느냐면서 자기 남편은 배낭을 메려하지 않는다기에 “자기 먹을 것조차 가지고 다니지 않겠다면 산에서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배낭은 메기 싫어하면서 먹는 것은 더 밝힌다”는 말에 모두가 한바탕 웃고 말았다.

임걸령도 옛날과 달리 샘터가 깨끗했다. 그러나 길 아래의 황 호랑이막 터에서는 자주 그랬던 것처럼 고기를 굽고 술판이 한창이었다. 임걸령 조금 지나 피아골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철조망으로 막혀있어 서울에서 왔다는 등산객 30여명이 되돌아가고 있었다. 철조망이 없는 곳에서 피아골로 빠지겠단다.
노고단과 피아골을 잇는 등산을 겸한 관광코스는 널리 알려져 많이 찾는 곳이다. 오래전 휴식년에 들어가면서 막아 놓았던 길이다. 그 동안 자연이 더 파괴되지 않도록 등산로를 손보고 휴식년이 끝났다면 막았던 길은 터야 하는 것이 일의 순서고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서비스다. 두번째 종주때는 등산로가 열려 있었다.)

그런데도 어디든지 한번 막아놓으면 헐 줄 모른다. 국립공원 관리도 이제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보고 즐기게 하면서도 자연을 덜 훼손케 할 것인가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두 번째의 문민정부도 해가 저물어 가는데 여기 산에서는 아직도 한번 막으면 그것으로 끝이고 무조건 금지부터 해 놓고 보자는 군사정권 시대의 편의주의적인 그 더러운 관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런저런 오만 가지 상념에 사로잡혀 걷다보니 돼지평전에 닿았다. 멧돼지가 많이 몰려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젊은이 2명이 지난해 왕시루봉 서쪽 계곡에 방사한 반달곰 4마리 중 남은 2마리를 추적할 준비에 한창이었다.
반달곰이 사는 지리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그러나 몸에 좋고 돈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을 찾아 지옥에라도 갈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우리 사회가 아니던가. 그들이 과연 반달곰이 지리산을 낙원으로 삼고 살도록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고단 능선에 올라선 것은 12시 30분. 하루에 노고단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을 미리 정해놓고 예약하거나 그 날에 정해진 인원이 미달일 때만 예약하지 않은 사람도 오를 수 있다면서 입구를 통제하고 있었다. 노고단의 황폐화를 막기 위한 것이란다. 사람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과 길을 구분하여 표시만 해 두면 그만일 것을 왜 산정에까지 줄을 세워 오르게 하는 것일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산장 쪽에서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는 천왕봉 쪽으로 산행을 계속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노고단 정상에는 올라보지도 못하고 그 아랫자락에서 천왕봉까지의 긴 능선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오후 시간이 넉넉해 점심을 해먹고 느긋하게 녹차까지 끓여 마셨다. 산장 앞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지리산 자료전시실에 들어갔다. 지리산에 자생하는 나무에 관한 정보와 약간의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해묵은 <사람과 산> <산>, 그리고 몇 가지 단행본이 모두였다. 그리고 실내가 너무 어두워 책읽기가 쉽지 않아 안타까웠다. 저녁을 먹고 6시부터 개방하는 산장 안으로 들어가니 연하천 산장에서 같이 머물었던 젊은 친구도 와 있었다.
등산이 처음이라는 고교생 2명에 나처럼 백두대간 종주를 솔로로 시작했다는 40대 후반의 사나이, 그리고 화엄사 계곡으로 내려가겠다는 서울 사나이 등이 어울려 지리산과 등산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에 열을 올리며 소등시간을 기다렸다.
이종길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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