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보니 아무래도 산행 중 한번은 비를 맞을 것 같아 우의를 배낭 위쪽에 넣고 6시 7분에 취사장을 나섰다. 밖은 아직 어둑어둑 했지만 밤차로 구례까지 와서 택시로 올라 왔는지 등산객 한두 명씩 여러 팀이 줄을 이었다. 일행은 이미 취사장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뒤늦게 힘겹게 올라오는 여인도 있었다.
무뎅기에 이르니 차일봉과 종석대로 가는 길을 막아 놓고 영구히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기다렸다. 영구히 들어갈 수 없다면 기왕에 온 김에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마지막으로 올라가 볼까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마저 이를 지켜주지 않으면 누가 지킬까 싶어 오르기를 단념하고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갔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구례에서 새벽 6시 출발한 일반버스가 도착했다(구례에서 성삼재까지 일반버스는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 10분까지 7차례 운행). 등산객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옛날 같으면 노고단까지 오르려면 화엄사 계곡을 따라 서너 시간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는데 참 좋은 세상에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고리봉을 향해 올라가는데 팔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 서 있어야 할 반야봉이 구름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비가 한줄기 퍼부을 것 같았다. 처음 만난 헬기장에서 잠깐 쉬는데 동쪽의 구름 사이가 훤히 밝아왔다. 7시 15분께 반야봉 아랫자락 임걸령에서 해가 얼굴을 내밀다 이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반야봉이 작게 모습을 드러냈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전에는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오르면서 계속 보아도 그대로였다. 이것은 윔퍼가 마터호른을 초등할 때 보았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브로켄(Broken)의 요괴현상의 일종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정상에 운무가 있고 햇볕이 수평에 가까운 각도에서 비칠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고리봉의 비탈길을 오르는데 만복대가 구름 속에 파묻히더니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야는 10여m 정도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앞이 빤히 열려있는 길뿐이었다. 비속을 얼마나 걸었을까. 만복대가 거의 다 되었다 싶을 때 길 양쪽에 흰 로프가 끝없이 이어진 듯 했다.
하얀 울타리 따라 구름 속으로 오르는 길. 끝이 보이지 않는 구름을 향해 혼자 터벅터벅 걸어 오르는 외톨박이 산쟁이. 오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앞뒤 좌우 어디를 보아도 구름뿐인 풍경, 오르고 또 올라도 구름밖에 보이지 않는 길, 내세(來世)가 있다면 거기에 이르는 길도 이런 것이 아닐까. 아무도 따라갈 수 없고 오직 혼자만 가야하는 그 길 말이다.
만복대에 올랐으나 모든 것이 구름 뒤에 숨어 버리고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만이 말없이 나를 맞아주었다. 지난번 왔을 때도 비를 맞았다. 그전에 언젠가 또 한번 왔을 때도 비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만복대와는 인연이 없구나.”라면서 바로 하산을 시작하니 산죽 사이길이라 단박에 신에 물이 들어와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좀 비싸기는 하지만 고아텍스 등산화를 사야할 것 같았다. 정령치에 이르는 마지막 고개에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괴물처럼 우뚝 서있었다. 그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지겨운 내리막 계단이었다.
정령치(鄭嶺峙). 마한의 왕이 변한과 진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鄭)장군에게 지키게 했다는 설과 마한 말기 정장군이 이곳에서 적과 싸우다 죽었다는 이야기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요기를 한 다음 북쪽으로 빤히 보이는 고리봉으로 향했다.
능선에 올라서니 왼편에는 성벽을 쌓은 듯한 흔적이 보이면서 무척 가팔랐다. 그 대신 오른쪽에는 많은 사람이 살아도 괜찮을만한 넓은 공지가 있었다. 전설이 어쩌면 사실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고리봉에 올랐다.
정상에서 쉬는데 뒤따라온 관광객들이 이정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달란다. 왁자지껄한 관광객들을 피해 서둘러 세걸산이 마주보이는 능선을 버리고, 왼편으로 내려다보이는 고기리로 방향을 잡아 하산을 시작했다.
얼마간 급경사의 미끄러운 내리막이 계속되더니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주 보이는 침엽수림대 속으로 길이 이어졌다. 걷기에 기분 좋은 산길을 20?30분 내려오니 대간 마루금은 철망 옆으로 계속되었다. 오른 쪽으로 목장을 개발하는 듯 수많은 나무들을 베어 놓았다. 검은 염소들이 여기저기 풀을 뜯고 있었다.
약간 짜증도 났지만 이내 철망 옆을 벗어났다. 산은 너무나 조용했고 숲 속에 가득 찬 부드러운 송진 냄새에 내 코는 벌렁거리며 즐거워했다. 더 다른 무엇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거저 산의 포옹에 살포시 몸을 맡겼다. 하산 길은 계속 내리막이었지만 소나무 숲의 테르펜 때문인지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상쾌한 기분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기리 삼거리에 내려서니 12시 30분이었다. 도로에서 멀리 갈 것도 없었다. 길 건너 마주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으면서 젖은 신과 우의를 볕에 말렸다. 1시간을 쉬고 나니 살 것만 같았다. 이번 산행의 마지막 코스인 수정봉을 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수정봉의 들머리는 하산 지점에서 오른쪽(북쪽)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10여분 가다 왼편에 건너다보이는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가야 했다. 지도에서 가리키는 대로 길을 따라 10여분을 더 가니 마을 우물 뒤 나뭇가지에 띠지가 나풀거렸다. 우물쭈물할 것도 없었다. 골목길로 따라 오르다 보니 아름드리 소나무 네 그루가 나타났다.
산신당이라고 하여 산신각이나 성황당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 소나무들이 기재마을을 지켜주는 신목(神木)으로 마을사람들은 이 신목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것이었다. 마을 옆의 덕산 저수지 용신(龍神) 제사도 여기서 지내는 듯했다.
수정봉 능선까지는 비교적 가팔라 오르기 힘들었다. 그러나 측점이 있는 정상까지는 10개 정도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길게는 10여분, 짧게는 2?3분 거리에 어깨를 맞대고 늘어 서있는 능선의 아기자기한 맛에 언제 봉우리들을 다 넘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능선 왼(西)쪽의 효기리 쪽은 찬바람이 회오리치며 올라오는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여서 때로는 긴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주천리가 있는 오른(東)쪽은 산릉이 덕산 저수지를 감싸듯하며 완만한 경사로 되어 있어 긴장을 달래주었다.
산은 말이 없다고 하지만 수많은 언어로 말을 걸어오지 않던가. 위험하면 긴장하라고 바람소리로 신호를 해주고, 지쳐있으면 쉬라고 평탄한 자리까지 마련해 준다. 나무도 마찬가지로 온갖 몸짓으로 말을 걸어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혼자 산을 오르내리면 심심하지 않느냐?” 또는 “외로워 어떻게 하느냐?”고 묻기를 자주 한다. 하기야 그들이 ‘산 사나이들은 홀로 산을 오르내리면서 계곡이나 능선, 물이나 바람, 나무나 바위 등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수정봉 정상 부근에서 망월산악회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망월산악회 띠지를 보았다. 어떤 사람들이 다녀갔을까 하고 이런저런 얼굴을 떠올리며 내려오는데 70걸음 정도의 사이를 두고 길에다 금을 그으면서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노고단에서 만난 40대의 사나이였을까. 혼자 하산하면서 꽤나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흙이 마른 상태로 보아 나보다 1?2시간 정도 앞선 것 같았다. 그런데 노고단 산장에서는 앞서간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정령치가 아니면 고기리에서 지체하는 동안 앞서간 것이었을까.
입망치에 이르니 등산로 옆에 묘지 한기가 있었다. 잠시 쉬었다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길이 좁은 데다 소나무들도 키가 작아 걷기 힘들었다. 어떤 때는 그렇게 서둘러 갈 것 무어냐면서 잡아당기기도 하고, 또 너무 뻣뻣하게 군다면서 허리를 낮추어 가라고도 했다.
이리저리 나뭇가지를 피하면서 20여분 오르니 다시 내리막이었다. 멀리 자동차 소리도 들리고 도로도 보였다. 오를 때처럼 나무가 작지는 않았으나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아서 인지 길이 좁았다. 그렇다고 다니기에 불편한 그런 등산로는 아니었다. 나무사이를 헤집으며 20분 정도 내려오니 임도와 마주쳤다.
5m정도 아래에 오른쪽 숲 속으로 들어가는 사잇길이 있었다. 임도를 버리고 그 길로 접어들어 100여m 따라가다 보니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듯했다. 임도로 되돌아가 띠지를 확인하면서 30여m 내려오니 오른쪽의 산길로 이어졌다. 20여분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더니 마을이었다.
길가 첫 집에서 저녁을 짓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나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개가 요란하게 짖어댔다. 오랜만에 만나본 농촌의 평화로운 저녁풍경이었다. 솔밭 사이 길을 조금 더 따라가니 여원재가 나왔다. 다음 코스의 들머리라도 확인해 둘까하다가 그대로 버스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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